the trail

A collection of 52 posts
프롤로그. 학교 대신 도시를 골랐다
the trail Featured

프롤로그. 학교 대신 도시를 골랐다

[펜화 작가 이하정 시리즈 - 펜 하나로 시작한 셀프유학기] Prologue 오춘기 일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몰랐다. 8년 동안 스타트업에서 기획자로 일했다. 회의실에서는 늘 남의 문제를 정리했다. 문서를 만들고, 화면을 설계하고, 일정을 맞췄다. 친구들이 대학을 다닐 때 나는 회사에 있었다. 누군가는 전공을 골랐고, 누군가는 방학마다 떠났다.
4 min read
사장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the trail

사장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시리즈. 인생은 파노라마처럼 - 굴업도, 인천] Ep. 3 사장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잔을 부딪히고, 그제서야 이미 저녁이 놀이 내려앉아있는 것을 깨달았다. 해가 조금씩 낮아졌고,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낮에 따뜻하던 풀들도 그늘이 닿자 금세 식어 물기를 머금었다. 백패커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저녁을 준비했다. 팩을 박는 소리도 어느새 잦아들고, 대신 포장지를
11 min read
하루에 한 번 오는 배 - 굴업도, 인천
the trail

하루에 한 번 오는 배 - 굴업도, 인천

[시리즈. 인생은 파노라마처럼 - 굴업도, 인천] Ep. 1 하루에 한 번 오는 배 벌써 16년 우정. 숫자를 세어보고는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셈을 했다. 굴업도 여행은 치킨집에서 시작됐다. 생존신고 같은 자리 잘 살고 있냐. 요즘은 어떠냐. 그런 말들을 맥주 한 잔에 조금씩 풀어놓던 밤. 대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였다. 벌써
3 min read
(에필로그) 선 - 사우디아라비아
the trail

(에필로그) 선 - 사우디아라비아

[다른 시간, 같은 질문] Vol.3 선 - 사우디아라비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손닿을 거리에 있었다. 한 발짝만 걸으면 편의점이 나오고, 두 발짝이면 카페가 나왔다. 아등바등 출근 첫날부터 숨이 찼다. 사우디에서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사무실은 옛 증권거래소 같았다. 고성이 오가고, 모니터 불빛이 번쩍이고, 모두가 쉬지 않고 달렸다. 밀려든 업무를 처리하며,
7 min read
세상의 끝 - 사우디아라비아
the trail

세상의 끝 -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흙먼지가 인다. 바싹 마른 모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따가운 햇살을 뚫고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순간 숨이 멎고, 옅은 탄성같은 소리가 새어 나온다. 발밑으로 푹 꺼진 거대한 바닥. 마치 바다가 말라붙은 심해 같은 풍경. '바다에서 물을 다 퍼내면 이런 느낌일까.' 영국의 세븐 시스터즈와 맞먹는 아찔한 높이. 하지만 푸른
5 min read
커튼 뒤의 식사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the trail

커튼 뒤의 식사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사우디의 낮은 마치 정지된 화면 같았다. 잔혹한 라마단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몸. 문을 열자 훅 하고 온기가 돌았다. 이 기분 좋은 따뜻함은 1초도 안 돼 끝났다. 이내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쏟아졌다. 잠깐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렀다. 거리는 차들만 쌩쌩 달릴 뿐 정적이었다. 길에는 고양이만 있었다. 고양이마저 '너흰
8 min read
악취, 그리고 쪽빛 - 나주 명하쪽빛마을
the trail

악취, 그리고 쪽빛 - 나주 명하쪽빛마을

나주. 영산강 자락. 쪽이 자라는 이곳. 이곳에 오기 전, 내가 상상한 쪽염색은 정갈하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하얀 모시가 푸른 물에 잠기는 우아한 정적. 쿵쿵쿵! "일어나셔야돼요!" 해가 뜨기 전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전체를 울리고 사라졌다. 전날 하루내 운전을 한지라 잠에서 미처 다 깨지도 못한 채 옷만 챙겨입고 밖으로 향한다.
5 min read
그날의 헤이그
the trail

그날의 헤이그

헤이그 특사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 시험에 나와 외웠던 이름들. 귀에 피가 나도록 듣고,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우다보니 감동은 사라지고, 마음 속엔 짜증이라는 감정까지 일었다. '아 뭐가 이렇게 많은거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첫째는 순국선열들에 대한 일종의 속죄일 것이요. 시험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이 만난 과거에서 느낀
6 min read
알 수 없는 오로라의 마음
the trail

알 수 없는 오로라의 마음

워크캠프의 공식적인 목적은 두 가지 - 환경 토론과 오로라 "헌팅" 매일 밤마다 환경으로 토론은 실컷 했으니, 이제 프로젝트의 본질인 오로라 관측을 완수해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하늘은 야속하게만 굴었다. 오로라는 커녕 검붉은 하늘에 구름들만 나를 비웃듯 유유히 지나갔다. 아이슬란드의 검붉은 하늘 완벽한 조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8 min 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