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영화처럼 – 펜화 작가 이하정 시리즈

EP.1 영화처럼 – 펜화 작가 이하정 시리즈

[펜화 작가 이하정 시리즈 - 펜 하나로 시작한 셀프유학기] Ep.1 영화처럼

한국에 있을 때도 서울 곳곳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골목골목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그러다 보니 나만의 여행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하면, P와 J의 조합이랄까?

하루에 한 곳만 정하고 무작정 출발한다.

일단 도착하고 나면, 그 동네를 계획 없이 그리고 정처 없이 거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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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지, 프라하에서 2만 보 걷던 날

여행스타일이라는 건, 두 발을 한 걸음씩 떼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곳에 있는 내 모습을 3자의 눈으로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 여행도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은 영화가 화근이었나 싶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주인공들.

그 모습이 늘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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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선라이즈의 한 장면

낯선 영감

장기여행자에게는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중요했다.
대중교통도 물론 이용했지만, 1시간이 넘는 거리가 아닌 이상은 무조건 걸었다.


걸으면서 보이는 담뱃가게.
할아버지들만 모이는 노포.
이 도시만의 간판들 그리고 걸음마다 바뀌는 이국적인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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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에 걸려있던 포스터

감각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들.

이것이 몇 년간 방황하던 내겐 최고의 자극이었다.


그런가하면, 그 자체가 전부 작업의 영감원이기도 했다.

걷다가 사진을 찍고, 다리가 아프면 공원에 앉아 드로잉을 했다.

그야말로 인풋을 넣고 그날그날 아웃풋을 바로 낼 수 있는 창작의 샘터.

무언가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마를 틈 없이 샘솟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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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여행가 밤에는 디자이너

여행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와 노트북을 연다.

글을 타이핑하면서 오늘 하루 내가 느꼈던 감정과 시선,

그리고 인상 깊었던 그 도시만의 이미지를 쏟아냈다.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이 여행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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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볼 수 있는 방식은 모두 시도하기로 했다.

텍스트, 사진, 드로잉, 영상. 전부 만들었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으니, 발악하듯 다 해보는 수밖에.

'그래. 셀프유학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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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쾰른 한 도미토리에서

영화처럼

내 개인 블로그 소개글은 "영화처럼"이다.

나를 제 3자의 시점으로 영화처럼 바라보고 싶어서일까.

낮에는 여행하고, 밤에는 낯선 곳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나 자신을 하나의 스틸컷으로 상상해본다.

떠올려지는 이미지 - 그러고 보면 지금도 이것이 내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미지가 모여 영화가 되듯, 여행의 매 순간순간이 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만의 스토리와 색이 이 여행 자체 그리고 여행의 결과물들로 드러나길 바랐다.

그리고 결국엔, 나의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영화같은 장면이 되었으면 했다.

나를 떠나고 싶게 만들어준 것도 영화의 한 장면이었던 것처럼.

'나'라는 색깔 – 어쩌면 디자이너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 을 찾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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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에서 길가에 앉아 펜을 꺼내들었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