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숲속 쉼터

인왕산 숲속 쉼터

'The frame' 시리즈 때문에 인왕산 숲속 쉼터에 가기로 했다. MBTI J이지만 목적을 위한 방문엔 왜 이리 귀찮음이 생기는지. 수영 끝나고 집 들러서 간단히 식사 후 커피를 챙겨 출발하는 일정이었지만 아빠의 전화에 스케줄이 꼬였다.

전화의 내용은 그닥 반갑지 않았다. 최소한의 욕심마저 사치처럼 느껴지고,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 단번에 씁쓸함과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동안의 누린 삶이 달콤한 꿈처럼 다가왔다. 이제와서야 이게 현실이라고, 그러니 정신 차리고 앞을 보며 살아가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그렇게 아린 마음을 안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올라가다 숨이 찰 때면 보게 되는 자연의 아름다움

산속에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왕산 숲속 쉼터를 보기 위해선 꽤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는 길은 여럿이지만, 나는 우리 집 뒤편으로 곧장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오르막에 숨이 가파르게 뛰는 코스. 쾌적한 바람에 잠시 숨을 돌리다가도, 내리쬐는 볕 아래 서면 이내 땀이 흐른다. 몸속 노폐물과 함께 일말의 걱정도 잠시 흘려보낸다. 기차바위까지 오면 그동안의 땀을 식혀줄 바람이 불어온다. 난 목표한 바가 있으므로 가볍게 정상을 패스하고 그 반대편 길로 내려간다.

가끔은 이 기차바위의 작은 나무(?)를 보기 위해 산을 오르는 듯하다. 반짝이며 흔들리는 나뭇잎을 좋아한다.

드디어 마주한 숲속 쉼터. 이름을 참 군더더기 없이 잘 지었다. 그야말로 푸르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쉼터다. 사방이 시원한 통창으로 되어 있어 어딜 봐도 바람에 나부끼는 잎들을 볼 수 있다. 숲 뷰를 편히 볼 수 있는 소파와 크고 긴 테이블, 책들이 있다. 자리 잡은 가구들은 연한 색의 나무 소재로 이루어져 있어 산뜻한 느낌을 준다. 끌리는 책을 꺼내어 읽고, 물결치는 햇빛에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공간 안에는 사람들이 있지만, 들리는 소리라곤 선풍기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뿐이다.

아, 나 분명 근심을 갖고 올라왔는데.. 그게 뭐였더라..

산란되는 빛 때문일까 마치 꿈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깨고 싶지 않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그런 오후- 하지만 문득 이 풍경을 누릴 수 있는 건 지나온 길 덕분임을 깨닫는다. 땀 흘리며 오르던 가파른 언덕과 마침내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그 길을 통과했기에 지금의 순간이 이토록 달콤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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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