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vs 가짜

진짜 vs 가짜

유행하는 인공지능 프로필 사진을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스튜디오에 가지 않아도 몇 초 만에 결과물이 뚝딱 나온다. 실물보다 나은 것도 놀라운데다, 쉽고 저렴하다.

결과물을 이토록 거저 얻는 세상이 오면,
앞으로는 대체 무엇이 남을까?

문득 오래전 영국 런던에서 찍었던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포토벨로 마켓의 노팅힐 서점 앞[1]
사진의 아름다움만 놓고 보면 AI가 만들어낸 풍경이 훨씬 나을지도.

발터 벤야민은 똑같이 생긴 복제품이 흔해질수록 진짜 원본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 즉 아우라는 상실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틀렸다. [2]

결과물인 이미지 자체의 아우라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아우라는 소멸한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단순 결과물에서 그 결과물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말이다. 아니, 그래서 오히려 더 귀해졌다고 하는게 맞겠다.

인터넷에 런던 서점의 고화질 이미지가 수백만 장 떠돌아도, 내가 찍은 오래된 사진 한 장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비 온 뒤의 젖은 냄새, 문을 열 때 울리던 둔탁한 종소리, 낡은 나무 바닥재의 삐걱거림과 같은 감각과 기억들을 '그럴싸하게 생성된 이미지'는 모방할 수 없다. 내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오직 그 시간, 그곳에 서 있었다는 사실, 그것은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실재)이다.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들이 넘쳐난다. 누구나 순식간에 아름답거나 완벽한 결과물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결과물의 아우라가 0에 수렴할수록, 사람들은 기꺼이 수고와 비용을 감수하며 몸으로 겪어낸 진짜 경험을 찾을 것이다.[3] 디지털 모방이 흔해질수록 결과물(예를 들어, 이미지)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예를 들어, 셔터를 누르던 순간)은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을 갖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각을 더 확장해 볼 수 있다. 공간에 대하여 말이다. 앞선 현상들로 인해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뀔 것은 자명하다. 과거의 공간이 물건을 유통하는 판매처였다면, 다가올 시대의 공간은 육체적 경험이 일어나고 확인하는 유일한 물리적 증거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복제되는 세상에서 내 몸을 움직여 겪어내는 체험과 물리적 공간. 경험과 공간, 이 두 가지는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값비싼 럭셔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1]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매장이다.

[2] Walter Benjamin, 1935,〈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3] 비즈니스 업계에서 최근 주목하는 리얼니스 프리미엄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