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몽가를 골똘히 생각함

프롤로그. 몽가를 골똘히 생각함

(시리즈. 경계가 없는 나라 - 몽골)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던 날, 손에 남은 것은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허무.

진리를 찾겠다는 열망으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마주한 사실은 생각보다 아찔했다. 진리라고 철썩 같이 믿어온 과학. 이조차도 당대 과학자들의 잠정적인 공통 합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난 뒤, 일을 저질러버렸다 — 소위 미친 선택. 갓 받은 박사학위, 그 뒤의 창창하던 미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걷기로 한 뒤,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 뭐하지?'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끈을 놓기로 결심한 순간, 발밑이 푹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트랙 한가운데 혼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공백 속에서,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가 시시각각 차올랐다.

그뿐인가. 동시에 집에는 긴 투병으로 쇠약해진 어머니가 계셨다. 방 안에 머물며 약해진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그렇다고 매정히 밖으로 나가,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도 모두 무거웠다. 앞으로 나아갈 길도, 뒤로 물러설 틈도 없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혀 숨을 들이쉬기조차 버거웠다.

그 무렵, 대학교와 대학원 시절 7년을 한 방에서 지낸 친구 대호 형이 불쑥 말을 건넸다.

"야- 내 결혼하기 전에 우리 여행 한번 가자."

목적지는 몽골.

네이버 카페를 통해 모인 낯선 동행들과 함께, 우리는 사람의 밀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낮다는 땅. 그 어떤 가로막는 벽도 없는 널찍한 초원으로 향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 허허벌판을 달리며 문명의 편리함이 하나씩 벗겨져 나가는 감각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날것의 감각들이 깨어나는지. 사람의 흔적이 지워진 칠흑의 밤하늘 아래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또 서로의 온기를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숨이 막혀가던 도시의 인간이, 아무런 경계도 없는 거대한 황야로 던져졌을 때 벌어지는 일들.

그 서툰 원정의 문을 연다.

(매주 금요일. 경계가 없는 나라-몽골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