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눈 떠보면 관짝
몽골의 밤은 이중적이다. 낮에는 그토록 메마르고 거칠던 공기가, 해가 지면 촉촉하고 서늘하게 가라앉는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홉스굴 호숫가. 호수가 워낙 거대해 마치 바다처럼 잔잔한 파도가 쳤다. 쏴- 파도가 자갈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소리. 게르 밖으로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쌀쌀한 새벽. 나는 대호형과 나란히 밤 호수를 걷고 있었다.
형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소개해 준 누나와의.
여행 내내 여자 일행들의 까탈스러움과 투덜거림에 조금씩 지쳐 투닥거리고 있었기에 형에게 퉁명스레 의문을 제기했다.
"형, 진짜 이 누나 맞아? 까다로운 편인 것 같은데, 정말 이 결정에 확신 있어?"
고민상담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모님 건강, 그리고 내 인생의 답답한 숙제로 흘러갔다.
'박사를 포기하기엔 쓴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까운데.'
'포닥을 갈까? 아니면 S전자 명함이라도 달아되나?'
'그래야 뭘하든 투자자들이 믿어주지 않을까?'
'혹시라도 잘못되면, 돌아갈 안전장치 하나쯤은 쥐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시 나는 부모님께도 차마 털어놓지 못한 채 끙끙대고 있던 참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그 한가운데에 서 있었으니, 나 이제 이 분야를 떠나 어디로 간다고 말하기도 뭐했다.
그 숨 막히던 조급함과 두려움. 세상이 탄탄대로라 치켜세워주던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공포. 그런 상황에서 내 성격과 일하는 방식들을 옆에서 가장 오래 지켜봐온 사람을 만나니 꾹꾹 담아뒀던 말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
그리고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호수의 파도 소리 위로 떨어졌다.
"융지야. 인생 한 번이다. 눈 떠보면 관짝이야.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하고 싶은 거 해라. 물론 내는 이제 그래 못살지만, 니가 내 것까지 다해라."
'눈 뜨면 관짝'이라는 섬뜩한 표현, 그리고 투박한 위로.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주저하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근 할아버지의 별세와 급격한 어머니의 병세 악화를 겪으며 인생이 참 짧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하던 참이었기에 더 그랬을지도.
맞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지.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잠깐의 정적 가운데, 마음 속으로 짧은 셈을 해본다.
포닥(박사후과정)을 가도 최소 2~3년, S전자에 들어가도 그 정도의 시간.
그러고 나면 나이는 40가까이네.
난 이 길이 아님을 알았는데, 그렇게 해서 내게 진짜 남는 게 뭘까?
남들의 시선과 안전장치를 얻어내는 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일까?
난 무엇 때문에 이리도 불안할까?
셈이 다 끝나기도 전에 형이 내 어깨에 팔을 얹어 어깨동무를 한다.
"내가 옆에서 봤다 아이가. 뭘 하든 니는 잘할 기다."
나를 가두고 있던 답답한 체면과 계산들이, 홉스굴 호수의 차가운 밤바람에 씻겨 내려간다.
얼굴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이들은 대부분 이직이나 휴직 사이 갭이어를 틈타 도망치듯 온 사람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전 직장 상사 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토로하던 얼굴들.
문득 이들의 얼굴을 본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란 몽골의 하늘 그리고 거대한 분화구 아래서, 얼굴에까지 쓰여있던 근심과 불평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나는 기꺼이 사진기사를 자처했다. 미묘하게 겉돌던 사람들, 그 얼굴들이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내 카메라의 렌즈를 바라본다. '역시 함께 고생하는 게 최고의 단합 훈련이구나' 라는 생각이 오프로드를 달리는 푸르공의 덜컹거림과 함께 머릿 속을 통통 튀어다닌다.
밤하늘 아래 몽골 보드카를 나눠 마시며 속마음을 듣다 보니, 어느새 오해가 옅어졌다. 대학원이라는 좁은 실험실에 갇혀 한없이 편협해졌던 내 시야. 다양한 성격을 가진 타인에 대한 관용도가 몽골의 넓은 초원을 보며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말에 뼈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속으로 혼자 고민이 많은 거였구나.'
'무례하다고 느꼈던 건, 악의가 아니라 그저 솔직한 성격이었던 거구나.'
여정의 마지막, 울란바토르 시내의 한 식당.
말고기 한 점에 술잔을 부딪치며 우리는 회포를 풀었다. 귀국 비행기 시간이 모두 달랐기에, 여기서 한 명씩 차례대로 공항으로 떠나보내야 했는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새 정이 들었나보다.
에필로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알 수 없는 몽골어로 방송들이 나오고, 전광판엔 한 글자도 해석할 수 없는 키릴 문자들이 떠다닌다. 어느새 몽골 여행이 끝이 났다.
출발 전과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달라졌다면 통장에는 몽골에서의 추가 지출 내역이 찍혔고, 몸에는 지독한 피로만 남았다는 것. 아프신 어머니와 아직 풀리지 않은 진로 문제도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배낭을 고쳐매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를 옥죄는 불안감은 대개 스스로 쌓아 올린 가상의 벽에서 온다는 것을. 출발 전 나를 휘감았던 진로에 대한 공포. 혹여나 실패할까 봐 안전장치에 안전장치까지 겹겹이 쳐두려 했던 끝없는 불안. 심지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까지 완벽히 통제하려 들었던 오만함까지.
이 거대한 대자연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끙끙대던 고민들이 또 얼마나 사소한 먼지 같은 것인지 깨닫고 나니, 역설적으로 그 모든 일들에 초연해졌다. 초연해지니 비로소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냉철해지니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창업을 한 지금 다시금 몽골을 떠올린다. 몽골의 초원보다 더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매일 새로운 오프로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다 보면 길을 잃기도 할 것이고, 타고 가던 차의 엔진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한복판에서 덜컥 죽어버리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그마저도 낭만 있지 않은가. 이 거대한 우주에서, 이 짧은 인생 중에, 지금 내 곁의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이 길을 겪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다. 지금 당장은 하늘이 무너질 듯 커 보이는 시련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웃으며 추억할 해프닝으로 남을 테니까.
몽골의 초원이 물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몽골 소녀가 내게 지었던 미소가 내게도 피어오른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