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껍데기는 가라
누린내
'몽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당연히 양고기.
끝없는 오프로드를 달려 도착한 첫 식당. 우리는 부푼 가슴을 안고 몽골식 양만두를 기다렸다.
한국에서 양꼬치 좀 씹어봤다며, 비위 하나는 기가 막히게 강하다고 자부하던 대호 형과 나.
'양고기엔 당연히 양 냄새가 나야지. 그게 진짜 맛있는 거 아이가?'
식탁에 오른 만두의 비주얼은 평범한 왕만두. 호기롭게 두꺼운 피를 베어 물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큼지막한 양고기 조각들과 양파가 속에 꽉 차있다. 음! 역시 양고기의 나라답게 속이 충실하구만!
하지만 씹는 순간, 고소한 지방 냄새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냄새가 코를 강타한다. 후추와 소금, 간장으로 어떻게든 애쓴 흔적이 있지만, 속수무책에 가깝다. 누린내는 덮이지 않고 되려 그 존재감을 뽐낸다.
어? 이거 잘못됐다.
이 생각이 스치는 순간, 동시에 대호 형과 눈이 마주쳤다. 큰일 났음을 직감한 잔뜩 찌푸린 눈썹.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끌어올린 입꼬리.
"와- 융지야. 우리 쉽지 않겠는데?"
옆에서는 식당 아주머니와 가이드 줌베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우리 옆엔 이미 포크를 내려놓은 지 오래인 여자애들.
우리는 어떻게든 예의를 차리려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억지로 여자애들 몫까지 삼켜보았지만, 세 알이 한계였다.
줌베의 입맛에 안맞냐는 말에 '맛있는데 다들 배불러서 그렇다'며 적당히 핑계를 대고는 식당을 나왔다.
나중에 게르에 도착해 줌베에게 이 냄새의 정체를 물었다.
"한국은 식용 어린양을 도축하니까 냄새가 안 나지. 울란바토르 시내 식당들도 아마 그럴거야. 근데 여긴 시골이잖아. 유목민한테 양은 재산이야. 양털도 깎고 젖도 짜야 하니까 어린양은 절대 안 죽여. 다 늙은 양을 잡아먹지."
그제야 완벽하게 납득.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여자애들의 주도로 바쁘게 식사를 준비했다. 메뉴는 라면과 줌베가 아이스박스에 싸온 삼겹살.
준비되자마자 모두가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허겁지겁 먹기 바쁘다.
줌베는 삼겹살을 한 젓가락 집어 먹더니, 깨작깨작 반찬만 집어 먹는다.
'줌베, 얼른 먹어!'
'난 괜찮아'
'왜? 우리 제대로 밥 못먹어서 뺏어먹는 것 같아 미안해서 그러지? 괜찮아! 얼른 먹어'
'그런 것도 있고, 나는 돼지냄새가 나서 못먹겠어...ㅎㅎㅎ'
이렇게 맛만 있는 걸. 줌베가 아까 식당에서 우리 감정이겠구나 싶다.
천혜의 화장실
먹는 것 바로 뒤에 좀 더러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도중에 차를 세울 때마다, 남자들은 일렬로 나란히 서서 탁 트인 평야를 바라보며 볼일을 보았다. 소변을 누면서도 이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아 피식 헛웃음이 난다.
바지 지퍼를 내리고 서 있으면,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몽골의 냄새가 밀려왔다. 낯선 흙냄새, 풀냄새, 말과 양의 똥 냄새. 거기에 푸르공이 뿜어내는 짙은 매연 냄새까지. 불쾌하기는커녕 묘하게 정화되는 기분이다.
눈 앞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완벽한 "하늘색" 하늘.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이런 풍경 속에서 매일 오줌을 갈기며 자랐으니, 칭기즈칸이 세계를 제패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
뒤를 돌아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여성 일행들이 보인다. 담요며 우산, 옷가지들을 총동원해 서로를 가려주느라 진땀을 뺀다. 저렇게 주변사람들이 내 용변을 보고 듣는게 더 수치스러운 걸까 아니면 우리처럼 다 까놓고 싸는 게 더 수치스러운 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친다.
노상방뇨(?)의 쾌감을 맛본 우리는, 첫 게르 숙소에 꽤 그럴싸한 화장실이 따로 있었지만, 기어코 뒤편 풀숲을 찾았다.
껍데기는 가라
문도, 가림막도, 구덩이도 없는 완벽한 공터. 깜깜한 어둠 속 타닥타닥 튀어 오르는 굴뚝의 불꽃.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탁 트인 초원과 아주 낮은 고원. 그리고 구름 사이로 보석처럼 뚜렷하게 박혀 반짝이는 별들.
바지 지퍼를 내리고 거대한 몽골의 밤하늘을 마주하고 섰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흙냄새 섞인 거친 바람. 어느새 고민들을 잊고 있던 것을 문득 발견하고는 나는 생각한다.
'아, 정해진 화장실 벗어나서 아무 데나 오줌 좀 싸도 세상 안 망하네.'
서울에서 매일 밤 쳇바퀴처럼 굴리던 커리어와 진로에 대한 조급함. 남들처럼 번듯한 길 위를 걷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던 막연한 공포. 문명의 껍데기를 다 벗어던진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그 무겁던 고민조차 피식- 헛웃음이 날 만큼 작고 사소한 먼지일 뿐이었다.
'내 고민, 진짜 별거 아니었구나.'
바지춤을 올리고 형과 함께 게르로 돌아가는 길. 나를 가두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초원의 바람에 훌훌 날아간 듯,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