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 우주와의 조우
풀들의 습기 때문인지, 오히려 온기를 머금을 물이 없어서인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따듯하던 공기가
해가 떨어지자마자 뚝- 하고 차가워진다.
뼛속이 시린 몽골의 밤공기.
탄성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는 길 없는 길을 덜컹거리며 며칠을 달렸다.
길 것만 같던 8일의 여정이 어느새 끝을 보이고 있었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어느새 마음의 장벽은 무너지고, 아쉬움이 커져가던 밤.
여태 밤만 되면 구름이 끼거나, 달이 너무 밝아 별을 볼 수 없었다.
오늘은 달이 그믐을 지나 완전한 삭.
어둠이 배경으로 짙게 깔릴 기대를 하며 다들 부산히도 준비한다.
밝은 게르 안에서 나오니 칠흑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손의 감각만으로 돗자리를 펴고 침낭을 폈다.
게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일렬로 누워있으니,
세상에서 정말 우리만 동떨어진 것 같다.
두꺼운 침낭을 목끝까지 뒤집어썼지만 한기가 파고들었다.
준비를 마쳐가는데, 먼저 누운 친구 하나가 탄성을 지른다.
"와~!!!"
서둘러 지퍼를 올리고 눕는다.
눈앞으로 무언가 뽀얀 게 끼어있다.
'구름인가...'
처음 보는 광경이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늘 전체를 빽빽하게 채운 뽀얀 은하수.
영어로 왜 밀키 웨이라고 하는지 단박에 이해를 했다.
별은 왜 이렇게 많고, 색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말 그대로 가슴팍으로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들
정신이 아찔해져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다.
우주와의 조우
그렇게 만화경을 처음 본 아이마냥
넋을 잃고 별들이 박힌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외마디 탄성이 정적을 깬다.
"어-!!!!"
친구가 가리킨 하늘에서
별똥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거짓말처럼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이렇게 별이 많이 떨어져도 되는 건가?'
우주의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 막막한 거대함.
수천억 개의 별들이 빛나는 그 아래 누워있으니,
내 몸이 한없이 무거워져 바닥 밑으로,
아니 정확히는 우주 반대편으로 내려앉을 것만 같다.
문득 내가, 내가 했던 일들이, 내가 하는 고민들이 먼지처럼 작게 느껴진다.
나 자신 - 대단한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야망.
나의 과거 - 내 열심의 산물과 증거들, 곧 자부심.
그리고 나의 미래, 갑자기 이유없이 멈춰 섰다는 공포감.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를 두고 떠나왔다는 짙은 죄책감.
곧 이유 모를 두려움까지.
사실, 한국에서의 나는 스스로 만든 벽 안에 갇혀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그곳에 있을 땐 나의 이 모든 것들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시급하게 느껴졌다.
몽골의 텅 빈 밤하늘 아래,
나를 짓누르던 그 거대하고 심각했던 불안감들이
저 우주 앞에서는 너무나 사소한 먼지 한 톨, 아니 그보다 작구나.
쳇바퀴 같던 일상, 시야가 좁아진 나는 눈앞의 문제가 세상의 전부라 느꼈다.
이렇게 내가 만든 벽에 가두고선, 조급함과 두려움으로 점점 더 몰아붙였다.
우주라는 무대 위의 작은 점
스스로를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
역설적이게도 이 깨달음이 채찍질하고 몰아세웠던 굴레에서 나를 끄집어낸다.
이것이 바로 현자들이 말해왔던 겸손일까.
내가 대단한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남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는 공포도,
그저 내 좁은 마음이 만들어낸 강박에 불과하다.
그래. 내가 이토록 작은 존재라면,
조금 돌아가거나 헤매더라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
시린 코끝으로 찬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꽉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이 빠진다.
천장에 잘 박혀 있던 별 하나가 휙- 하니 떨어진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