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못하는 OO
챗GPT에게 '20대 직장인처럼 말해줘'
라고 역할을 부여해 본 적이 있는가?
소위 '페르소나'를 AI에게 입력하면 그럴싸한 말투는 놀라울 정도로 흉내낸다. 하지만 묘하게 겉도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런 고민이 들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한 노인이 그림 앞에서 10분이 넘도록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안경까지 벗어 든 채 캔버스를 뚫어질 듯 바라보는 시선. 작가가 본인의 작품을 볼 때도 저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뒷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저 분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화폭 속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중일까? 아니면 화가의 당시 생각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 공감한다는 것, 사유한다는 것. 그것은 그저 표면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다. 철저하게 그 사람이 되어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내면의 수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대 AI 시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고객 공감? 그거 그냥 AI한테 페르소나 씌워서 물어보면 되는 거 아냐?"
아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 AI의 방식은 철저히 '병렬적'이다. '20대', '여성', '직장인'이라는 키워드를 던져주면, 수만 개의 관련 데이터를 한 번에 펼쳐놓고, 다음에 나올 가장 확률이 높은값을 뱉어낸다.*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계적으로 조립해 낸 자아의 대답을 정말 그 대상에 대한 진정한 '공감' 또는 '이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반면 인간의 사유는 '직렬적'이다. 표면의 정보에서 출발해 근본적인 감정을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든다.
'화가는 이 마음이었을까? 아니야.'
'그럼 왜 여기에 이런 붓 터치를 남겼지? 혹시 체념인가?'
공감은 상대방(작가 혹은 고객)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수싸움. 마치 바둑과 같다. 다만 다른 점은 바둑이 흑과 백의 딱 떨어지는 점(분절, Discrete)으로 승부를 낸다면, 인간의 사유와 공감은 경계선이 없는 감정의 선(연속, Continuous)을 따라가는 바둑일 뿐.
인간의 공감은 여러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늘어놓는 연산이 아니다. 하나의 대상을 향해 끝까지 파헤치는 행위다. 꼬불꼬불 따라가며 감정선의 미로를 파훼한다. 통계적 모방이 아니라,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날 미술관에서 만난 노인의 뒷모습이, 효율과 확률을 좇는 AI 시대에 던지는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덧. 아, 물론 겉으로 보면 사람보다 잘 듣고, 공감해준다. 그래서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더 귀해지는 것일지도.
*다음에 이 시대 쓰이고 있는 AI(LLM) 관련해 기회가 된다면 원리와 함께 인문학적 인사이트들을 남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