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창업자를 알아보는 두 가지 방법
스마트폰도, 카드도 무쓸모인 도시에 홀로 선 기분이란...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베이징은 당혹스러웠다. 가상사설망(VPN) 없이는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 보낼 수 없었다. 일단 택시를 불러 무작정 친구가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 '취!(가다)'라는 말밖에 몰라, 주소를 가리키며 취! 취! 를 외쳤다. 한참을 달려 아파트들이 빽빽한 곳에 들어서더니 얼마가지 않아 택시기사가 차를 세웠다.
'여기인가 보구나?'
카드를 내밀고 문을 열자, 기사가 손사래를 친다.
"뿌넝!" (카드 안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가 나타나서 중국어로 솰라솰라 몇 마디하더니, '띵-' 소리와 함께 위챗페이로 결제를 단숨에 마쳤다.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마치 아기가 된 기분. 국경 하나 넘었다고 한 순간에 글도, 말도 못하고, 심지어 돈도 못 쓰는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 숨쉬듯 사용하던 방식들이 모두 무의미해진 순간.
이내 큰 소리로 나를 와락 안으며 반긴다.
"여~ 융지~"
사내 치곤 예쁘장한 얼굴은 그대로다. 꽤 큼지막한 귀고리가 눈에 들어온다.
"야. 오랜만이다. 너 아녔으면 나 어디로 팔려갈뻔 했어.ㅋㅋㅋ"
초등학교 시절 아파트 윗집과 아랫집에 살다 이사로 헤어졌던 인연.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유년기를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다시 베이징에 터를 잡고 살아가던 녀석.
친구와 그의 어머니는 20년 남짓한 시간만에 처음 만난 나를 가족처럼 맞아주었다(강아지도 함께; 나만 보면 짖는 것으로 보아, 그리 반기는 것 같진 않았지만.). 방 한 칸을 내어주고, 따뜻한 밥을 챙겨주고, 일일 기사를 불러 도시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서태후가 머물렀다는 여름 별궁 이화원을 땀 흘리며 걷던 날, 친구 어머니가 아침 일찍 싸주신 백향과(패션후르츠) 아이스티를 건네받았다. 사각거리는 얼음과 함께 시원한 단맛이 목을 넘어간다. 그 순간, 이 타국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달콤함이 짜릿하게 까지 느껴지더라.
내가 알던 지식들이 어느 것 하나 통하지 않는 곳에
홀로 떨어졌을 때.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가들을 만나고 나 또한 창업을 하게 되면서, 중국에서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카드도 메신저도 되지 않던 베이징이, 나의 전문성도 네트워크도 통하지 않는 초기 창업과 겹쳐보이는 건 그 감각이 꼭 닮아있기 때문일까.
공동창업자를 알아보는 방법 1: 신뢰 우선의 원칙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킹 행사나 창업 부트캠프를 돌며 공동창업자를 찾는다. 시장의 룰도 없고 제도적 보호도 없는 불확실한 곳에서 운명을 함께할 사람을 말이다. 명함 수백 장을 교환한다고 진짜 공동창업자를 만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천천히 만나 부딪히며 신뢰를 검증*하기엔, 초기 스타트업에게 시간도 자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끝까지 버텨내는 팀들을 보면, 창업 직전에 만나 친해진 사이보다 이미 신뢰가 검증된 이들이 뭉친 경우가 많다. 함께 밤을 새워본 동료, 오랜 시간을 함께 겪은 친구처럼, 밑바닥의 성품과 태도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상황에 따라 신뢰와 관계 맺음의 순서를 적절히 바꿀 줄 아는 것이 대표의 동물적 감각일테다. 평온한 일상에서는 사람을 만나며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불확실한 격변기에는 이미 내 곁에 검증된 신뢰성 높은 사람과 손을 잡는것.
공동창업자를 알아보는 방법 2: 생존 지식
팀 내 한 사람이라도, 생존을 위한 지식 쪼가리라도 알고 있으면 팀 전체가 살 확률이 극적으로 높아진다. '외국인으로서 위챗페이를 어떻게 가입해야 하는지, 잘 되는 VPN은 뭔지, 낯선 골목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같은 현장의 생존 요령은 검색이나 AI가 알려주지 못한다**. 창업도 그렇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 그럴싸한 스펙들은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위기를 어떻게 뚫어냈는지, 실패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계약이나 파트너가 함정인지와 같은 체화된 정보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 뚫어내는 힘이 있는 사람, 가설 실험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을 찾아라.
결국 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정답을 '아는' 모범생보다,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는 악바리 같은 생존 본능이 전부이다.***
그날 베이징 공항에 내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지만,
20년의 세월을 건너뛴 오랜 신뢰,
그리고 그 친구가 먼저 온몸으로 익혀둔 현장 생존 지식이 결국 나를 살렸다.
창업이라는 낯선 타국에 홀로 떨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일테지.
좋은 공동창업자 한 사람이 나를 살렸다. 자랑이냐고?
— 맞다. 자랑이다.
(마침.)
*사실 저자도 지금의 공동창업자를 만나기 전 몇 차례 공동창업자 될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요즘은 이것을 AI 테크씬에서는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부릅디다. Michael Polanyi, Personal Knowledge, 1958.
***스타트업 씬에서 그렇게 언더독이니, 허슬 경험이나 부트스트래핑 경험이 있니 없니 하는 것이 이 이유에서일 것이다.